‘영천 청제비’ 전경 [국가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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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청제비’ 전경 [국가유산청][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경북 영천 도남동에 위치한 저수지인 청지(청못) 인근에는 예스러운 글자로 비문이 새겨진 비석이 오랜 세월을 버텨내고 있다. 받침돌도, 덮개돌도 없이 자연석 그대로 세워진 이 비석은 홍수와 가뭄이 빈번했던 신라가 어떻게 물을 다스렸는지, 그리고 국가가 어떤 체계로 수리 사업을 추진했는지를 묵묵히 증언한다.1일 국가유산청은 신라의 수리 사업과 행정 체계를 보여주는 ‘영천 청제비’를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 영천 청제비는 신라 시대에 조성된 저수지인 ‘청못’ 옆에 세워진 비석으로, 국가가 자연재해에 대응하며 제방을 건립하고 수리한 과정을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비석은 총 2기다. 자연석 한 면에 앞뒤로 각각 새긴 ‘청제건립비’와 ‘청제수리비’, 그리고 조선 숙종 14년(1688년)에 땅에 묻혀 있던 이 비석을 다시 세운 사실을 기록한 별도의 ‘청제중립비’로 구성된다.청제건립비(앞면) [국가유산청]청제수리비(뒷면) [국가유산청]비석 앞면의 청제건립비는 법흥왕 23년(536년) 당시 큰 제방을 준공한 사실과 함께 공사 규모, 동원 인원, 공사 책임자, 지방 관리자 등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비석 뒷면의 청제수리비는 원성왕 14년(798년)에 제방 수리 공사를 완료했다는 내용과 함께 파손과 수리 경과 보고 과정, 수리 규모와 공사 기간, 공사 책임자, 동원 인원 등의 내용이 새겨져 있다.청제건립·수리비와 청제중립비 두 비석 모두 신라 6세기 특유의 자유롭고 비정형적인 서풍으로 새겨졌다. 보존 상태도 좋아 판독이 가능한 수준이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청제중립비 역시 일반적인 조선 서체를 따르지 않고 신라의 필체를 따르고 있어 주목된다.청제중립비 [국가유산청]국가유산청은 “영천 청제비는 치수 공사의 경과뿐 아니라 왕실 소유 제방의 관리 방식과 당시 보고 체계 등 신라 사회의 국가 행정 운영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며 “서로 다른 시기의 비문이 하나의 비석에 공존하고, 조성 이후 지금까지 원위치에서 보존되어 온 희귀한 사례로서 역사·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국가유산청은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검토한 뒤,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보 지정을 확정할 계획이다.‘영천 청제비’ 전경 [국가유산청][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경북 영천 도남동에 위치한 저수지인 청지(청못) 인근에는 예스러운 글자로 비문이 새겨진 비석이 오랜 세월을 버텨내고 있다. 받침돌도, 덮개돌도 없이 자연석 그대로 세워진 이 비석은 홍수와 가뭄이 빈번했던 신라가 어떻게 물을 다스렸는지, 그리고 국가가 어떤 체계로 수리 사업을 추진했는지를 묵묵히 증언한다.1일 국가유산청은 신라의 수리 사업과 행정 체계를 보여주는 ‘영천 청제비’를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 영천 청제비는 신라 시대에 조성된 저수지인 ‘청못’ 옆에 세워진 비석으로, 국가가 자연재해에 대응하며 제방을 건립하고 수리한 과정을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비석은 총 2기다. 자연석 한 면에 앞뒤로 각각 새긴 ‘청제건립비’와 ‘청제수리비’, 그리고 조선 숙종 14년(1688년)에 땅에 묻혀 있던 이 비석을 다시 세운 사실을 기록한 별도의 ‘청제중립비’로 구성된다.청제건립비(앞면) [국가유산청]청제수리비(뒷면) [국가유산청]비석 앞면의 청제건립비는 법흥왕 23년(536년) 당시 큰 제방을 준공한 사실과 함께 공사 규모, 동원 인원, 공사 책임자, 지방 관리자 등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비석 뒷면의 청제수리비는 원성왕 14년(798년)에 제방 수리 공사를 완료했다는 내용과 함께 파손과 수리 경과 보고 과정, 수리 규모와 공사 기간, 공사 책임자, 동원 인원 등의 내용이 새겨져 있다.청제건립·수리비와 청제중립비 두 비석 모두 신라 6세기 특유의 자유롭고 비정형적인 서풍으로 새겨졌다. 보존 상태도 좋아 판독이 가능한 수준이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청제중립비 역시 일반적인 조선 서체를 따르지 않고 신라의 필체를 따르고 있어 주목된다.청제중립비 [국가유산청]국가유산청은 “영천 청제비는 치수 공사의 경과뿐 아니라 왕실 소유 제방의 관리 방식과 당시 보고 체계 등 신라 사회의 국가 행정 운영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며 “서로 다른 시기의 비문이 하나의 비석에 공존하고, 조성 이후 지금까지 원위치에서 보존되어 온 희귀한 사례로서 역사·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국가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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